9. 평화공원, 원폭자료관

2019. 12. 2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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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정류장 이름이 (관광객에게) 직관적으로 바뀌어서

어디서 내려야 할 지 알아보기 쉬워졌다

감기로 골골대며 왔는데

다행히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왼쪽에 계단도 있긴 한데

생각보다 계단이 많은지라

굳이 여기로 올라올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했다

근데 나는 애초에 여기 오기 전부터 별로 내키지 않았다

왜냐면 근본적으로 

이 나가사키에서 원폭을 언급할 때마다

가해자가 자신이 입은 피해에 과몰입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일본은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그 전쟁 중에 죽은 사람 하나하나는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개개인의 생각과 행동은 직간접적으로 '대일본제국'의 침략전쟁을 지원했지만

결국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도 대량학살병기에 의해서 말이다

허나 그런 일시에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경우는

재래병기에 의해서도 일어났었고(드레스덴 폭격이라든가, 도쿄 대공습이라든가)

원자폭탄이라는 신병기 하나에 집착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요컨대 원폭은 그냥 심볼라이즈하기 좋은 하나의 상징일 뿐,

그 과거의 모든 가해 기록과 침략전쟁을 도왔던 이들의 역사를 무시한 채

하루아침에 수만 명, 수십만 명이 죽거나 끔찍한 피해를 입었던 역사만

남겨놓을 수는 없단 얘기다

이 자리에는 어느 건물 터가 남아있었는데

폭심지에서 가까웠던 나가사키 형무소 우라카미 형무지소인데

원폭 당시 전원이 즉사했다

웃기는건 수용자 81명이라면서 한국인은 그 명수조차 정확히 헤아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주민등록이라도 안됐나?

뭐 이런 상이 있었고

참배하기 위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온 듯 했다

이쪽으로 소풍온 아이들도 보였고

공원 가운데 통로에는 평화와 우호를 기원하는 조각상이 늘어서 있었는데

소비에트 연방, 체코슬로바키아, 독일민주공화국 등 구 공산권 국가에서 온 것들만

놓여 있던게 신기했다

하긴 걔들은 원폭 안 썼으니까

공원 구경을 마치고 이제 원폭 자료관으로

가려는데 여기서 오른쪽 둑길을 따라가면 폭심지를 중심으로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 나오고

왼쪽으로 해서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인적이 매우 드문곳이었다

근데 알고보니 이쪽이 아니라

폭심지 공원쪽에서 올라왔어야 했다

길을 건너가면 원폭자료관인데

여기로 가기 앞서 먼저 들를 곳이 있었다

평화의 모자상...이라는데

정말 말로 형용하기 힘든 끔찍한 고통과 절망이 느껴지는 조각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형상을 구체화할 생각을 했을까

이 동상 앞으로 엘리베이터가 있고

내려가면 흰 소녀상이 있는데

정확히는 그 옆 추도비에 오고자 했다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70년대에 들어서야 

당시 나가사키에서 원폭에 휘말려 세상을 떠난

조선인들을 기릴 수 있었던거다

문법을 보니 조총련 쪽에서 같이 협업을 한듯


이걸 읽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름없이 비참한 삶을 영위하다 종전 몇일을 앞두고 숨진 수많은 이들

마지막 문단의, 일본에게 요구하는 내용들은 지금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체력이 바닥이니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도록 한다

가동시간도 자료관 시간에 맞춰져있는듯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관광지...라고 하긴 좀 뭐하지만 나가사키에 오면 가급적 들르게 되는 곳이다

저런 마스코트도 있었구나

방문기념 스탬프도 있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야 당연히 원폭이 터진 날인데... 이렇게 보니 좀 무서웠다

매표소가 1층에 있는게 아니라

나선형으로 된 슬로프를 따라 내려가면 있는 지하2층 입구 앞에 있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컨셉으로...

카운터에서 살 수도 있지만 자판기도 있으니까

여기서 사면 된다

신주쿠교엔, 교토 식물원처럼

QR코드를 찍고 입장하는 방식

11시 2분, 

정확히 원자폭탄이 나가사키 상공에서 터진 그 시각에 멈춰있는

벽시계를 용케도 찾았나보다

그리고 피폭 당시 시가지의 풍경을 표현하고 있었고

나가사키에서 터졌던 팻맨과

강력한 열을 받아 녹아버리거나 변형된 유품들을 볼 수 있었다

녹아 덩어리가 되어버린 사이다병,

순간 엄청난 열을 받아 기이한 형태로 우그러진 물건들을 만져볼 수 있었다

200엔 입장료치고는 상당히 볼거리가 많았다. 

시료, 인터뷰 등 미디어 자료도 풍부했고...

잠깐 폭심지 공원이 어떻게 생겼는지만 둘러보고

이제 나가사키 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딱히 볼 거리도 없고 무엇보다 몸살이 심해 어디 다니기가 힘들었다

계속 한숨 푹푹 쉬며 돌아다님 ㅋㅋㅋ

다시 전차타고 나가사키 역으로

순식간에 도착

이 정도면 전차 1일 승차권도 꽤 뽕을 뽑았다

역 근처에서 맛있는걸 먹고 기분전환이나 할까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속도 더부룩해 소화제와 이런 젤리를 사 먹었는데

이 모든 문제가 첫 날 얇은 옷 입고 돌아다녀 생긴 

감기에서 비롯된것임을 뒤늦게 알았다

나가사키역의 스탬프는 개찰구 바로 옆에 있다

귀엽...

나가사키도 오미야게가 다양한 편

특히 서양식 빵, 샌드류가 여러가지 구비되어 있었다

이것도 좀 사고...

JR과 JT가 공동으로 만들어 진행하는 생활에티켓 캠페인

우리도 저런 기본적 매너를 좀 ... 어? 좀 그냥 뭐... 

그런게 적극적으로 전개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이제 정말 정신 놓고 그냥 백화점 벤치에 앉아

어르신들처럼 멍하니 앉아있었다 ㅋㅋㅋㅋ 이게 무슨 여행이야

그나저나 이 시간부터 타치노미 가게가 저렇게 장사가 잘되나

사세보는 한 번에 가는 열차가 있긴 한데

레일패스도 있고, 가는 시간도 줄이고, 조금이라도 편한 좌석에 앉아가려고

카모메로 이사하야까지 간 다음 거기서 쾌속열차를 타기로 했다

출발하려면 시간이 더 지나야 하는데 일단 앉았다

그리고 꾸벅꾸벅 졸며 이사하야까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