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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앉아서 한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바로 다음 역인 후카가와에서 내려야 한다

왜 특급열차 이름이 라일락이냐 하면

삿포로 시의 상징꽃이 라일락이라서 그렇다고

원래 JR홋카이도의 특급열차는

(지금 타는 라일락 포함 카무이, 호쿠토, 오오조라 등)

운전석이 2층에 있고

1층은 승객 출입이 가능해

선두부 창문으로 바깥 구경을 할 수 있었는데

몇년 전 인명사고가 난 뒤로

들어갈 수 없게 막아두었다

후카가와 도착

뭐 둘러볼 틈도 없이 바로 맞은 편에

내가 탈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후카가와 근처에는

호쿠류 해바라기 마을

이라는 곳이 유명하다

(7월말 - 8월초가 절정인)

참고로 이 호쿠류는

(사진 출처 : Zekkei Japan)

1. 교통이 불편하고 (버스가 1-2시간에 1대, 기차도 없음)

2. 교통이 불편하며(갔다 온 사람 대부분 렌터카를 추천)

3. 여행 시간에 제한이 있는(꽃피는 기간이 짧고, 

해바라기꽃이어서 오후에는 역광이 잘 뜬다고 함)

여러모로 까다로운 곳이지만

일본에서도 몇 안 되는 해바라기 꽃밭 명소라고 하더라

키하 54계 동차

국철 말기 경영 효율을 위해 대량으로 만들었던

키하 31계 동차가 엔진이 하나여서

급구배(경사가 심한) 구간에 고통받던 것을 보완하여

엔진 2개가 달려있다

홋카이도 뿐만 아니라 저 시코쿠 지방에서도 많이 보이는 차다

여기에도 꽤 많은 사람이 탔다

마찬가지로 에어컨 없는 차량이었지만

다들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만끽했다

그리고 그걸로도 충분히 시원했다

아까 신토츠카와도 그렇고

이 주변이 홋카이도의 쌀 주산지같다

이시카리누마타

아까 아침에 타고 온 학원도시선이

원래는 이 이시카리누마타까지 이어졌었지만

1972년에 폐선되었다고 한다

보다보니 아까 신토츠카와에서도 봤던

어느 일본인 아저씨가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큰 비닐봉지(...)에 든 물을 꺼내 마시질 않나

(물을 그렇게 파는 건 또 처음 봤다)

롱시트 양 옆을 오가며 창문도 열어 역과 역명 팻말 사진을 찍고...

배낭여행용 백팩과 허리의 전대, 

여러모로 편해보이는 옷과 신발을 보며

그 아저씨가 진짜(...)임을 알 수 있었다

에비시마 역은

과거 TV 소설 '스즈란' 의 실제 무대였다는데

그러니까 이건 역사가 아니라 세트장이다

옛스러운 오른쪽쓰기 간판을 보라...

전파도 거의 안 잡히는 산 기슭을

구불구불 올라가는 노선이다

여기도 영업계수 몇천 찍는

굴지의 적자 노선인데

연선 인구는 나날이 줄고 있고

(루모이 시 인구 - 1968년 40,231명 -> 2015년 22,221명)

침목과 선로의 수축과 팽창이 극단적으로 일어나는

홋카이도의 기후적 특성상 유지보수 비용도 훨씬 많이 드는데

점점 사람들은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느려터진 기차를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디젤엔진 소리나는 똥차지만

나름 화장실도 달려있고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무궁화호보다는 나아보였다

후카가와에서 출발한 2량짜리 동차는

이렇게 뒤쪽 열차의 출입문을 폐쇄하고 출발하는데

이 뒤쪽 차량은 있다 루모이에 도착하면

바로 분리하고 출발한다

토게시타 역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드문드문 있을뿐

하나둘 승객 수는 줄어갔지만

사진 찍기 좋은 자리의 크로스시트는 이상하게 비지 않아

그냥 롱시트에 앉아가기로 했다

글을 쓰면서 찾아봤는데

루모이 본선과 병주하는 고속도로(후카가와-루모이 고속도로, E62)가 98년 개통되자

당해 180명 수준이었던 루모이역의 일평균 이용자 수는 

그 해를 기점으로 감소,

2015년 기준 61명까지 쪼그라들었다

요금도 무섭게 올라가지만

JR패스가 있으니 두렵지 않다

크로스시트 뒤쪽의 바닥에는

이런 까만 자국이 있었는데

과거 차내흡연이 되던 시절의 흔적인가 싶었다

그게 맞다면 얘들은 그때 이후로 바닥을 한 번도 안 갈았다는 얘긴가...

루모이 본선은 총 길이가 50.1km인데,

이는 JR의 본선이라 이름 붙는 노선 중 가장 짧은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청량리~수원 간 분당선이 55.3km 니까...

루모이 도착

날씨가 정말 좋았다

선로가 3개나 있는 큰 역의 모습이

당장 내년에 폐선이 되네 마네 하는 현실과 겹쳐져

서글픈 느낌을 주었다 

종착역에 오면 으레 찍는 열차 선두부 사진도 찍고

부지런히 분리 작업 중이었다

이렇게 루모이 본선을 모두 탔다

루모이 근처의 관광안내

특히 동해안의 황금곶(오곤미사키)이나

천망대(센보다이, 전망대 아님) 같이

일몰 명소가 많이 보였다

7월~8월 바캉스 시즌의 주말에는

시내 무료 순회버스 카즈모 호도 운행한다고 나와있다

마시케, 하보로, 호로노베 등 인접한 도시로 가거나

후카가와, 아사히카와로 가는 버스의 탑승 안내도 대합실에 붙어 있었다

수십년 전 까지만 해도 모두 기차로 갈 수 있는 도시였지만

가까운 시일 내 이 루모이조차 기차로 올 수 없는 곳이 될지 모른다

한창 가라후토(사할린)와의 연락용 항구이자

각종 홋카이도의 물자수송으로 잘 나가던

루모이 역의 과거 모습도 이제 저 빛바랜 흑백사진만큼

희미하게 남아있다

여기도 역 스탬프가 대합실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생각보다 잉크가 너무 말라있어 썩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지는 해가 아름다운 황금곶의 역

루모이 본선 루모이 역'

역 주변 추천 식당도 나와있었다!

근데 어차피 1시간 정도 있다 다시 나갈거라

멀리 갈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미리 봐둔 가게가 있다

주차된 프리우스와 택시만 없었으면

3, 40년 사진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빛 바랜 풍경이다

역 바로 앞에 라멘집이 하나 있는데

여기가 꽤 맛있다고 해서 와 봤다

아니 일단 여기 말고 문 연 가게 자체가 거의 없던데(...)

영문 메뉴같은건 물론 없다

뭐 잘 모르겠는데 전부 라멘 같긴 하다

혹시나 당황할까봐 미리 메뉴판도 찾아보고 갔는데

다들 카이에이 스페셜

(쇼유와 미소의 블렌드 - 850엔)을 먹는 듯해서

냉큼 시켰다

거리엔 사람구경도 하기 힘들던데

여기만 빈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붐비던 것도 신기했다

특이하게 전설의 챠슈멘을

주말에만 10그릇 200엔 추가로 즐길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기간, 수량 모두 까다로운 조건인데

찾아보니 호평 일색이긴 하더라

이런 시골 도시의 라멘 가게가

타베로그 화제의 가게 (지금도 3.5+ 임)이자

미슐랭 가이드 홋카이도 2017년판 빕 그루망에 선정됐다니

정말 신기하다

카이에이 스페셜 라멘

초점이 저세상으로 떠났지만

맛은 정말 좋았다

아니 여태 일본서 먹어본 라멘 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당치도 않은 돈코츠 라멘 먹으며

그래 맛있다 맛있어 하며 자신을 속여왔던 게 후회됐을 정도였으니까(...)

이걸 먹으러 굳이 여기를 올 필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정말 맛있었다

마시케, 루모이, 하보로 같은 곳을 들른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걸려있는 간판 스타일과

내부의 웨스턴 스타일이 묘한 언밸런스를 이루던 가게였다

다만 궁금했던 건

만약 루모이 본선이 폐선되면 

이 가게는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었다

에키마에 카이에이

영업시간

오전 11:30~오후 2:00

오후 5:30~7:00

수요일 휴무

잠깐이지만 주변 시내나 둘러볼까 했는데

역 앞에 어시장이 있다는 간판이 있어 가봤는데

이게 어시장...이라고 하면

뭔가 좀 어색해서 들어가지 않았다

인근 도시로 향하는 카이간 버스

저걸 타면 황금곶이라든가 아무튼 주변 명소도 가볼 수 있었겠지만

일단 열차시간도 안 맞고

해질녘도 아닌데 굳이? 라는 생각도 들어

타지 않기로 했다

낙설주의라니 홋카이도 주의팻말은 참 남다르다

루모이 시의 면적이 297제곱km 가 조금 넘는데

인구가 20,900여 명 밖에 안된다

105만 명이 사는 고양시의 면적이 268제곱미터인데

거기도 덕양구 같은데 가면 이런 분위기긴 하지만

여긴... 나름 역전 중심가 같은데...

여기까지 왔는데 라면 한 그릇만 먹고가긴 뭐해서

관광안내소에 들렀다

대충 토산품도 판다니까

근데 보니까 완전 수산물 아니면

우리 입맛엔 안 맞는 음식밖에 없어서

살만한게 딱히 없었다

도시 마스코트가 청어알을 형상화 한 것부터 글러먹었다 이 동네는(농담임)

쿠니마레 사케도 있어서 정말 고민했지만

이걸 삿포로까지 또 들고가서 짐 정리해 들고갈 생각을 하니

마땅찮아 대충 카레하고 아이스크림을 샀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정말 할 게 없어 역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편의점도 들르고

(로손의 짱큰 소프트아이스크림도 보고)

이 깡촌에서도 로손은 IC카드 결제가 되는 사실에 놀라며(...)

관광안내소에서 산 호박 아이스크림

쇼산베츠 라는 동네 특산품인 것 같다

단호박 맛이 희미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아이스크림이었다